사고가 발생하면 늘 같은 질문이 반복된다. 무엇이 부족했는지,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무엇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해야 하는지다. 철도 안전의 역사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단 한 번도 모호했던 적이 없다. 안전은 개인의 각성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주의력의 총합으로 유지되지도 않는다. 안전은 언제나 구조의 문제였고, 구조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의 문제였다.
사람이 실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그 실수가 곧바로 사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조건을 바꾸는 것. 그것이 철도 안전이 축적되어 온 방식이었다. 그런데 최근 국토부가 내놓은 안전강화정책은 이 오래된 원칙에서 점점 멀어진다. 사고가 발생하면 구조를 먼저 고치기보다, 사람을 먼저 특정하려는 방향으로 기운다. 안전을 말하지만, 안전을 만들어 온 방식과는 다른 길을 간다.
국토부의 최근 안전강화정책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운전실 CCTV 설치이고, 다른 하나는 이른바 ‘안전실명제’, 즉 안전책임자 1,000명 지정이다. 겉으로 보면 전혀 다른 정책처럼 보인다. 하나는 영상이고, 하나는 인사·조직 정책이다.
그러나 이 두 정책은 서로 다른 곳을 향하지 않는다. 사고의 원인을 구조와 조건에서 찾기보다, 사람의 행위와 책임으로 재구성하려는 하나의 흐름에 놓여 있다. CCTV는 사고의 순간을 장면으로 남기고, 안전실명제는 사고 이후를 이름으로 남긴다. 장면과 이름이 결합되는 순간, 사고는 빠르게 개인의 문제로 정리된다.
이 글에서 말하는 구조는 단순히 시설이나 장비를 뜻하지 않는다. 구조란, 철도 안전이 실제로 작동하는 전체 설계를 말한다. 열차 운행과 작업 시간이 어떻게 충돌하는지, 차단 시간은 충분한지, 안전한 이동 통로는 확보되어 있는지, 상례 작업이 왜 반복되는지, 인력은 적정한지, 외주와 원청의 책임은 어떻게 나뉘어 있는지까지 모두 포함한다.
구조란, 현장에서 노동자가 어떤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조건의 합이다. 철도는 처음부터 “사람이 조심하면 된다”는 전제로 운영된 산업이 아니다. 사람은 실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상태에서, 그 실수가 사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구조를 설계해 왔다. 안전은 개인의 미덕이 아니라 조건과 체계의 결과였기 때문이다.
안전책임자 1,000명이라는 숫자는 상징적이다. 발표하기 좋고, 정책 의지를 보여주기에도 적당하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질문이 생긴다. 왜 하필 1,000명인가. 왜 더 그럴듯한 1,350명도, 2,500명도 아닌가. 어떤 기준으로 산출했는가. 어떤 자료를 검토했고, 어떤 대안을 비교했는가.
안전 수요를 면밀히 분석한 결과라면 근거를 공개하면 된다. 반대로 그 근거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이 숫자는 안전의 숫자가 아니라 행정의 숫자다. 관리하기 좋은 숫자, 책임을 배분하기 쉬운 숫자, 정책을 설명하기 편한 숫자일 뿐이다. 설명되지 않는 숫자는 안전을 설계하지 못한다. 다만 책임을 배치한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 숫자가 ‘증원 없는 1,000명’이라는 점이다. 사람을 늘리지 않고 책임자만 늘린다는 것은 누군가의 기존 업무가 줄어들거나, 누군가가 겸직하거나, 누군가의 공백을 다른 누군가가 메운다는 뜻이다. 이미 빡빡한 현장에서 이 방식이 안전을 높일 것이라는 기대는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책임과 기록이 강화되면 현장은 어떻게 변할까. 이는 개인의 성향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사람들은 악의를 품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나중에 설명 가능한 행동을 선택하게 된다. 체크리스트에 적힌 항목, 서명으로 증명되는 절차, 기록으로 남는 동작이 우선이 된다.
반대로 규정으로 담기 어려운 숙련의 판단은 점점 뒤로 밀린다. 소리의 미세한 변화, 진동의 어색함, 경험이 쌓여야 느껴지는 이상 신호들이다. 이런 판단은 기록하기 어렵고, 증명하기 어렵다. 형식이 강화될수록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이것은 ‘누군가가 숨기는’ 문제가 아니다. 형식이 현실을 밀어내는 구조적 결과다.
이런 흐름 속에서 안전은 점점 관리 대상이 된다. 점검했는지, 체크했는지, 보고했는지, 책임자가 있었는지, 기록이 남았는지가 안전의 기준이 된다. 안전은 개선의 문제가 아니라 평가의 문제가 된다.
관리형 안전정책은 사고를 줄이는 데 익숙하지 않다. 대신 사고를 정리하는 데 능숙해진다. CCTV는 장면을 남기고, 실명제는 이름을 남긴다. 그리고 정책은 말한다. 더 촘촘한 책임과 더 많은 기록이 필요하다고. 그러나 이렇게 안전의 언어가 바뀌는 순간, 구조는 손대지 않은 채 사람만 바꾸는 정책이 반복된다.
현장은 이미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다. 다만 책임이 성립하려면 수행 조건이 필요하다. 충분한 인력, 충분한 차단 시간, 안전한 이동 통로, 상례 작업을 줄이는 구조 개편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책임을 지우려면 위험 앞에서 멈출 수 있는 실질적인 권한과 보호가 함께 있어야 한다. 권한 없이 책임만 늘리는 정책은 안전을 강화하지 않는다. 사고 이후를 대비한 행정 장치를 늘리는 일일 뿐이다. 이름표로 안전을 대신할 수 없다. 조건이 먼저다. 구조가 먼저다.
운전실 CCTV와 1,000명 안전책임자 지정은 서로 다른 정책처럼 보이지만 같은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사고를 줄이기 위한 정책인가, 사고 이후를 정리하기 위한 정책인가. 구조를 바꾸는 정책인가, 사람을 관리하는 정책인가.
우리는 안전을 반대하지 않는다. 우리는 구조를 건드리지 않은 채 사람부터 세우는 방식에 반대한다. 사고는 구조의 문제다. 그 구조를 바꾸지 않은 채 사람을 늘어세우는 정책은 안전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다.
2026년 1월 30일
전국철도노동조합 고양고속차량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