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 나라에서 철도의 나라로

모달시프트(철도중심 전환), 말은 어렵지만 질문은 단순하다
집중기획 3부작 KTX 사장의 철학을 엿보다 2026년 7월 10일

모달시프트(철도중심 전환). 말부터 어렵습니다. 모달은 이동의 방식, 그러니까 자동차냐 철도냐 버스냐 배냐 하는 교통수단을 뜻합니다. 시프트는 방향 전환입니다. 그러니 모달시프트(철도중심 전환)란 결국 차 중심 사회에서 철도와 공공교통 중심 사회로 이동의 기준을 바꾸자는 말입니다. 공식 정책용어로는 전환교통이라는 말도 쓰입니다. 기존에 도로로 옮기던 사람과 화물을 철도나 해운 같은 친환경 교통수단으로 옮기자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모달시프트(철도중심 전환)는 단순히 트럭 몇 대를 화물열차로 옮기자는 정도의 말이 아닙니다. 도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도로와 철도에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출퇴근하고 이동할 것인가, 철도노동은 사회 안에서 어떤 가치를 가질 것인가까지 묻는 말입니다.

이 연재의 제목을 〈KTX 사장의 철학을 엿보다〉로 잡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 책 전체를 현 사장 개인의 저작으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 연구자가 함께 만든 연구 결과물입니다. 다만 이 연구의 핵심 문제의식은 김태승 사장이 교수 시절 발표해 온 철도정책론과 맞닿아 있고, 그는 지금 코레일 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지나간 연구용역 자료로만 읽기 어렵습니다. 앞으로 공사가 어떤 언어를 쓰게 될지, 철도정책의 방향을 어디에 두려 할지, 그리고 그 말이 현장에 내려오면 무엇이 되는지를 가늠하게 하는 텍스트입니다. 우리가 보려는 것은 사장의 속마음이 아닙니다. 사장이 그려 온 철도의 미래를 노동자의 눈으로 먼저 읽어보자는 것입니다.

자동차 중심 이동에서 철도와 공공교통 중심 이동으로 전환하는 모습

철도 내부가 아니라 교통체계 전체에서 시작한 질문

이 책의 출발점은 철도 내부가 아닙니다. 제목에는 철도산업구조개혁이라는 말이 들어가지만, 책이 붙잡고 있는 문제는 한국 사회의 교통체계 전체입니다. 1990년대 철도구조개혁 논의가 본격화되던 때, 한국철도는 만성적인 투자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도로는 빠르게 늘었지만 철도는 정체되거나 후퇴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이 문제를 교통체계 전체의 투자 방향 문제로 보지 않았습니다. 국영 철도조직의 비효율, 경쟁 부족, 경영구조의 문제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철도를 더 튼튼하게 만들 것인가보다 철도를 어떻게 나누고 경쟁시킬 것인가가 중심 쟁점이 되었습니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묻습니다. 애초에 문제를 잘못 잡은 것 아니냐고 말입니다.

1999년 이후 고속도로와 철도 연장 추이를 비교한 그래프

보고서가 보기에 지난 25년 동안 가장 강력해진 교통수단은 철도가 아니라 자동차였습니다. 고속철도는 들어왔고 수도권 전철망도 커졌습니다. 새 역도 지어졌습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기본값은 여전히 승용차가 되었습니다. 신도시는 철도보다 도로를 먼저 생각했고, 지방의 혁신도시와 산업단지도 철도망과 제대로 맞물리지 못했습니다. 역은 생겼지만 도심과 떨어진 외곽 주차장이 되었고, KTX를 타기 위해서도 승용차를 몰고 가야 하는 일이 흔해졌습니다. 책은 이 현실을 자연스러운 기술 발전의 결과로 보지 않습니다. 자동차가 편해서 이긴 것이 아니라, 자동차가 이기도록 도시와 도로와 세금과 계획이 짜여 왔다고 봅니다. 자동차 중심 사회가 정책의 결과라면, 철도 중심 사회도 정책과 사회적 선택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문제의식입니다.

반가운 말일수록 먼저 가능성을 따져야 한다

철도노동자로서 철도가 중심이 되는 사회는 반가운 말입니다. 우리 노동의 가치가 커지고 철도의 공공성이 사회적으로 더 크게 인정받는다면 나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연 가능한가. 이미 자동차는 생활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지방에서는 차 없이는 출퇴근도 장보기도 병원 가기도 어려운 곳이 많습니다. 물류는 트럭에 깊게 의존합니다. 코레일은 수익이 잘 나지 않는 노선과 공익서비스를 떠안고 매년 적자를 감당합니다. 자동차 산업과 도로를 둘러싼 이해관계도 거대합니다. 자동차를 가진 개인의 생활, 자동차 산업 노동자의 일자리, 도로 중심으로 형성된 지역경제까지 생각하면 모달시프트(철도중심 전환)는 결코 간단한 구호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 책은 흥미롭습니다. 무턱대고 철도가 좋다고 외치는 자료가 아닙니다. 철도 중심 전환이 얼마나 큰 사회적 결심과 재정, 도시계획, 운영체계, 거버넌스 변화를 필요로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철도를 더 깔자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철도가 실제로 자동차의 대안이 되려면 역과 도시가 연결되어야 하고, 지역과 지역이 서울을 거치지 않고도 이어져야 하며, 열차 시간표는 외울 수 있을 만큼 규칙적이어야 합니다. 버스와 자전거와 도보가 역에서 끊기지 않아야 합니다. 철도 이용을 늘리겠다면 자동차 이용을 그대로 방치할 수도 없습니다. 도로와 철도에 동시에 무한정 돈을 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기름값 밖에 보이지 않던 비용들

책은 도로와 승용차가 부담하지 않는 비용에도 주목합니다. 도로는 눈에 보이는 통행료와 유류비만으로 굴러가지 않습니다. 혼잡 비용이 있고, 사고 위험이 있고, 온실가스 배출이 있고, 도로와 주차장이 차지하는 토지가 있습니다. 도로 중심 개발은 도시를 넓게 흩뜨리고, 그렇게 흩어진 도시는 다시 대중교통을 어렵게 만듭니다. 대중교통이 어렵다는 이유로 다시 차가 필요해지고, 차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다시 도로를 짓습니다. 그렇게 자동차 중심 구조는 스스로를 반복합니다. 책은 이 반복을 끊으려면 철도와 대중교통을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비용을 줄이는 장치로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철도는 비싸지만 승용차 중심 사회가 싸다는 착각을 깨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로와 주차장이 차지하는 넓은 공간과 철도의 선형 공간을 비교한 도식
모달시프트(철도중심 전환)는 철도를 많이 타자는 말이 아니다. 자동차가 기준이던 사회에서 철도와 공공교통을 기준으로 삼자는 말이다.

이 문장은 듣기 좋습니다. 그러나 듣기 좋은 말일수록 더 따져야 합니다. 철도 중심 전환을 말하려면 철도망이 있어야 하고, 열차가 있어야 하고, 역과 버스와 도보와 자전거가 연결되어야 합니다. 재정도 있어야 하고, 요금정책도 있어야 하며, 자동차 이용을 관리하는 정책도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그 철도를 실제로 움직이고, 정비하고, 관제하고, 고치고, 지키는 노동이 있어야 합니다. 모달시프트(철도중심 전환)가 말뿐인 미래가 되지 않으려면 노선도 위에서만 검토할 수 없습니다. 현장의 노동조건과 안전체계까지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이 말은 이제 책 속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코레일도 모달시프트(철도중심 전환)를 공개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여객과 물류의 철도 수송 전환, 열차 운행 안정성, 차량 유지보수 물품 수급 같은 표현이 함께 등장합니다. 모달시프트(철도중심 전환)는 홍보 문구로만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공사의 경영 언어, 정부의 교통정책 언어, 노사 교섭의 배경 언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노동조합은 이 말을 피할 수 없습니다. 피할 수 없다면 먼저 읽어야 합니다. 읽어야 따질 수 있고, 따져야 요구할 수 있습니다. 철도 중심 전환이라는 방향에 박수를 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박수만 칠 수는 없습니다. 그 전환의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가. 적자 노선과 공익서비스는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철도 이용을 늘리겠다면서 현장 인력과 정비시간과 안전투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철도망을 촘촘하게 만들겠다면서 지방의 역과 도시교통은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탄소중립을 말하면서 민자철도와 수익성 논리로 공공성을 다시 훼손하지는 않을 것인가. 이런 질문을 함께 던져야 합니다.

이 연재는 책 요약이 아닙니다. 사장 홍보도 아닙니다. 철도노동자가 사장의 철학을 미리 읽고, 그 철학이 현장에서 무엇으로 검증되어야 하는지 묻는 글입니다. 1부에서는 모달시프트(철도중심 전환)라는 말을 풀었습니다. 2부에서는 구조개편의 문제를 보려 합니다. 과거에는 철도를 쪼개고 경쟁시키는 방식이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통합과 효율화의 이름으로 현장을 압박하는 방식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쪼개도 문제이고 묶어도 문제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형태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바꾸는가입니다.

3줄 요약

모달시프트(철도중심 전환)는 차 중심 사회를 철도와 공공교통 중심으로 바꾸자는 말이다.
자동차 지배는 자연현상이 아니라 투자와 도시계획의 결과였다.
철도노동자는 그 전환이 현장에 무엇을 요구하는지 먼저 물어야 한다.

집중기획 3부작 | KTX 사장의 철학을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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